인간은 왜 자야만 할까?
잠의 생물학이 말해주는 생존의 조건
잠자는 동안 우리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도망칠 수도, 먹을 수도, 싸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생명체가 ‘잠’을 선택했다.
이 불편하고도 위험한 활동을, 왜?
생존보다 우선된 본능, 수면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할 만큼 무방비해지는 잠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수면이 생존 자체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잠은 뇌의 회복과 재정비, 노폐물 제거, 에너지 절약, 면역 체계 유지를 동시에 수행한다.
우리가 밤마다 잠들지 않는다면, 뇌는 점점 제 기능을 잃고 몸은 고장 나기 시작한다.
동물도 ‘자는 이유’가 있다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은 겨우 1mm도 되지 않는 미생물이다.
하지만 이 작은 생명체조차 탈피 시기에 ‘잠’을 잔다.
이는 수면 유전자와 관련돼 있다.
심지어 벌레도 억지로 잠을 못 자게 하면 나중에 ‘몰아서 자는’ 현상을 보인다.
이건 곧 수면이 학습된 습관이 아닌,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증거다.
잠은 선택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각인된 기능이다.
뇌의 청소 시간: 수면 중 일어나는 일들
우리가 잠든 동안, 뇌에서는 대청소가 시작된다.
림프계처럼 작동하는 '글림프계'가 뇌세포 사이를 누비며
낮 동안 쌓인 신경 독소와 노폐물을 씻어낸다.
또한 수면은 감정 조절, 기억의 정리, 학습 내용의 저장에 핵심적이다.
깨어 있는 동안은 이 모든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즉, 수면은 뇌를 위한 유일한 정비 시간이다.
수면 부족이 만든 실험실 속 ‘붕괴’
1964년, 고등학생 랜디 가드너는 11일간,
무려 26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2일차부터 집중력 저하,
4일차에는 환각과 피해망상,
6일차엔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붕괴됐다.
실험 종료 직전엔 시간 감각 상실까지 보였다.
잠을 빼앗긴 인간은 그렇게 급속히 무너져 내린다.
생존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수면
잠은 단순히 피로 회복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작동이며,
진화가 끝까지 지켜낸 기능이다.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잠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이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잠든다는 것.
그것은 신체가 보내는 가장 진실한 구조 요청이다.인간이 ‘자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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